티스토리 뷰

반응형

간토 대지진은 일본 간토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으로, 주로 "1923년 간토 대지진"을 지칭합니다. 이 지진은 1923년 9월 1일에 발생했으며, 지진 자체의 규모와 파생된 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초래했습니다. 

목차

    간토 대지진, 피해 및 복구 개요

    관동 대지진으로도 알려진 관동 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을 강타한 엄청난 자연재해입니다. 이 지진은 일본 표준시로 오전 11시 58분에 발생했습니다. 이 지진의 규모는 모멘트 규모 Mw7.9 - 8.2, 일본 기상청 규모 Mj7.9 - 8.1, 표면파 규모 Ms8.2 - 8.3으로 추정됩니다. 사상자는 105,385명에서 142,800명 사이로 추정됩니다. 진원지는 사가미만 앞바다에 있었지만 그 영향은 도쿄, 요코하마 및 주변 지역을 포함한 간토 지역 전체에 걸쳐 느껴졌습니다. 간토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참혹했습니다. 이웃 전체가 불타고 가스관이 파열되고 요리 용 스토브가 뒤집혀 수많은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불은 빠르게 번져 피해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쿄였습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무너지고 인프라가 심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140,000명으로 추산되어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지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즉각적인 영향 및 대응

    지진 직후 피해 지역에는 혼돈과 혼란이 닥쳤습니다. 재난의 규모에 압도된 정부는 생존자들에게 즉각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통신 회선이 두절되어 여러 기관 간의 구조 노력과 조정을 방해했으나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일본 국민은 놀라운 회복력과 결속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구조 및 복구 작업을 돕기 위해 "요비코스"로 알려진 자원봉사 그룹을 신속하게 구성했습니다. 이 그룹은 생존자에게 음식, 쉼터 및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필요한 시기에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사회도 집결했는데요. 여러 국가에서 구호 활동을 시작하여 식량, 의약품 및 재정 지원의 형태로 원조를 제공했습니다. 글로벌 협력과 공감의 정신은 이 어려운 시기에 분명했습니다.

    관동 대지진시 일본의 행동

    일본의 간토 대지진 대처에 대한 의견은 다양합니다.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간토 대지진 100주년을 맞은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별도의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고 밝힌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에 대해 “거꾸로 가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도노무라 마사루 도쿄대 교수는 “영향력 있는 일본 지도자와 정부, 지자체 수장이 간토대지진에서 이렇게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애도의 뜻을 표할 필요가 있다”며 고이케 지사의 태도에 “조금 실망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의 조선인 학살은 정당했다고 주장해온 일본 내 ‘혐한’ 단체가 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자신들이 철거를 주장해 온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집회를 벌일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추도식을 준비하고 있는 단체들은 도쿄도 측에 이들의 집회를 허가하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도쿄도 역시 우경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간토대지진은 일본 수도권이 있는 간토 지방에서 1923년 9월 1일 발생했으며, 10만여 명이 사망하고, 200만여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당시 계엄령을 선포했고, 일본 사회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거나 ‘방화한다’ 같은 유언비어가 유포돼 일부 신문에 사실확인도 없이 보도되었고, 보도 내용에 의해 더욱 더 내용이 과격해진 유언비어들이 아사히 신문, 요미우리 신문 등 여러 신문에 다시 실림으로써 “조선인(또한 중국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거짓소문이 각지에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소문은 진위 여부를 떠나 일본 민간인에게 조선인이나 중국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하였습니다.
    이에 곳곳에서 일본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심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이나 중국인으로 확인되면 가차 없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하여 약 6천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과 중국인 약 800명이 자경단 등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유언비어를 공식 확인하였으나, 피해자의 수를 줄여서 발표하고, 자경단 일부를 연행·조사하였으나,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으며,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되었습니다. 학살 사건으로 인한 사법적인 책임 또는 도의적인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구는 전혀 없었습니다.

    <번외 > 지진의 대처방법

    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실내에 있을 경우: 지진으로 흔들리는 동안은 탁자 아래로 들어가 몸을 보호하고, 탁자 다리를 꼭 잡습니다. 흔들림이 멈추면 전기와 가스를 차단하고, 문을 열어 출구를 확보하고 건물 밖으로 나갈 때는 계단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이동합니다. 엘리베이터 사용은 금지됩니다.
    2. 실외에 있을 경우: 떨어지는 물건에 대비하여 가방이나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건물과 거리를 두고 운동장이나 공원 등 넓은 공간으로 대피합니다.
    3. 운전 중일 경우: 비상등을 켜고 서서히 속도를 줄여 도로 오른쪽에 차를 세우고, 라디오의 정보를 잘 들으면서 키를 꽂아두고 대피합니다.
    4. 지진 발생 시 상황에 따라 적절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을 평소에 익혀두고, 실제 발생 시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응형